광저우에 다녀와서

2010.12.06 06:15

이병호 조회 수:14389 추천:2985

여러분들은 주말을 잘 놀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금요일에 가서 토요일에 발표하고 오늘 돌아왔다. 오늘 오후에 배 태워주는 관광프로그램도 마다하고...

중국에 갈 때마다 서로 상반되는 생각이 교차한다.
이번 경우처럼 대학에서 주도해서 개최하는 비교적 소규모 (그래도 200명쯤 참석했다.) 학회의 경우는 대학원생들이 많이 동원되어 학회 준비를 한다. 나를 공항에 마중나오고 또 데려다 주고 했다.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나도 이해를 한다. 여러분 선배 중 외국사람 마중 나가라고 내가 시켰던 경우도 여러번 있었고, 내가 직접 공항에 마중 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년 2월에도 OSA 부회장이 올 텐데 내가 또 그리 해야한다. 그건 예의때문이 아니라 친분상...
중국에서 내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뭐 좋지만은 않다. 학생들이 너무 친절하게 해 주려 한다. 하지만, 미국 학회를 봐라. 누가 우리나라 사람을 마중 나오며, 중국 사람을 마중 나오겠는가? 미국 대학에서 세미나를 할 때도 교수가 약도도 주지 않는다. 올 사람이 알아서 자기 방에 찾아 오라는 거다.
중국 학생들은 외국의 훌륭한 사람들로부터 배울 게 많다며 과잉 친절을 베푼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좀 굴욕감을 느낀다.
중국 학생들은 외국 학술회의에 나가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수들도 미국에 가려면 매번 단수 비자를 받아야 하고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좀 안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학문수준이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무시당할 때가 오지 않을까 정말 걱정스럽기도 하다.
중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 있다. 작년에 광섬유로 노벨 물리학상 받은 사람도 중국 태생이다. 축사를 하는 미국 교수가 중국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그걸 지적하더군...
중국계 미국인으로는 유명한 사람이 많다. Tingye Li나 Ron Shen 같은 원로가 아니라도 (OSA 차기회장이 이 사람 제자다.), 여러분이 잘 아는 UC Berkeley의 시앙 장, 코니 챙 하시난,, Stanford의 Fan 등등...
코니는 몇 년전에 FiO 췌어를 했는데, 개회식에서 중국에서 온 자기 부모를 소개하더군... 물론 거기 앉은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었지만, 내 생각엔 좀 별일이다 싶었다.

이번에 나를 중국에 초청한 사람은 나노포토닉스를 하는 사람인데, 자신이 integral imaging 과제를 하려 한다고도 하며 내게 이것저것 묻더군...
그런가 하면, 내 발표에 대해 질문을 한 학생은 우리 논문(김휘 박사 논문)을 읽어 보았는데 그것 관련 질문이 있다며 내가 이야기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묻기도 했다.
발표 전에는 어떤 젊은 교수가 학생 두 명을 데니고 와서 논문 세 개를 내게 주며 인사를 했다. 자기도 나처럼 플라즈모닉스와 홀로그래피를 한다면서... 홀로그래피 논문에는 김휘 박사 연구가 인용되어 있다며 내게 보여주더군...

지난 번 북경에서는 김휘 교수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에서는 한준구 박사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젠 다니다 보면 우리연구실 논문을 읽었다며 내게 와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좀 된다.
물론 이런 일을 당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몇년 전 미국 학회에서 큰 상을 받았던 분이 썼던 글에 다소 제국주의적(?) 냄새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선도한 연구에 대하여, 아시아에 다니면서 그게 implement 되는 걸 보면 기쁘다고...

그러면 나는 기쁜가 하면, 뭐 꼭 그렇지는 않다.
OSA는 내게 아시아 관련하여서도 큰 일을 부탁해서 이젠 내가 회의를 주재해야 할 판이다.
이래저래 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학회에 다니면서 나보다 많이 발표하는 우리 연구실 학생은 물론 없다. 우리연구실에서 발표를 가장 많이 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이제는 보면, 같이 학회에 참석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플레너리 톡을 하는데 나는 그냥 초청논문 수준이다.
내가 분수에 넘게 커진 것일까?
내가 젊었을 때는 상관 없었지만, 이제는 플레너리 연사 중에도 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이 꽤 있다. 심지어 연배를 중요시하는 중국의 학회에서도 보면 내 나이 정도의 중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도 플레너리 톡을 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벤 이글턴). 물론 나보다 훌륭하니 할 말은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뛰어난 아웃풋을 못 낸다는 게 점잖게 말하자면 창피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건 내가 뭘 내세우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똑똑한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나 카이스트 같은 곳에서 세계적 아웃풋을 못 내면 우리도 쪽팔리고 한국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지금도 나보고 어드바이저리 커미티에 들라고 하는 학술회의들이 좀 있는데, 내가 좀 더 나이가 들면 둘 중 하나를 해야 할 거다. 그런거나 하면서 초청논문 발표는 안 하는 것, 또는 플레너리 톡 같은 것도 좀 하는 것...
(키노트 발표란 걸 두 번 정도 했었지만 그리 훌륭한 학회는 아니었다.).
내가 어느 길로 갈 지는 아마 여러분들이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열심히 하기 바란다.
이젠 국내의 무슨 상 심사를 해 봐도 젊은 교수들이 정말 훌륭한 데 논문 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연구실 출신 교수들도, 뭔가 성취를 해 보고 싶다면, 멀고도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길은, 그냥 연구가 좋아서 그냥 거기 매달려 살아야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 뛰어난 결과가 나오는 때가 왔다. 똑똑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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