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변희재
2003/3/3(월)
"됐다. 됐다. 교육개혁 니들 마음대로 해라 - 서울대부터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새 정부의 5년 임기 교육부총리로 김우식 연세대학교 총장이 유력시 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주 오명 아주대 총장 내정설로 한바탕 소동을 벌인지 딱 1주일 만이다.
김우식 교육부총리님, 죽은 대학에 돈 퍼부어 업고 간다고 교육개혁이 되겠습니까? 교육개혁은 대학개혁이 아니라 전체사회개혁이나 다름없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주 부산에서 강준만 교수 강연회에 참석한 뒤 밤늦게 강준만 교수와 사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 나는 오명 내정자를 시민단체와 네티즌의 힘으로 저지한 것을 예로 들며, 이제 정말 서울대와 연고대로 중심이 되는 학벌 카르텔을 깰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혁 네티즌이 10만이라 치자. 이 10만의 네티즌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 통폐합론을 외치며 적극적인 서명운동을 하면, 6.8혁명 당시 소르본느 대학이 파리 국립대학으로 통폐합이 되었던 쾌거를 한반도에서 재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당시 프랑스의 국공립 통폐합은 소르본느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교수가 주도했으니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긴 다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이 국공립 통폐합을 시도할 가능성은 0%라 생각하면 된다.
내가 갖고 있던 낙관적인 견해는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네티즌이 교육개혁을 주도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오명의 입각을 막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명의 입각 저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더구나 교육개혁에 투철한 신념이 있는 교육부총리가 부임만 해준다면 산적한 교육개혁을 네티즌의 여론형성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금껏 교육문제는 공부 못한 놈의 잘못이라 단정짓던 버릇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꿀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이러저러한 근거로 나는 강준만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서울대 정원 축소론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서울대에 대한 여론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고, 서울대의 질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면 한번 네티즌과 시민단체가 모두 힘을 합쳐 피라미드식의 대학서열화를 철폐하고, 참된 고교 교육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강준만 교수는 지승호씨와의 인터뷰에서 "국공립 통폐합이든 뭐든 그건 오래 걸리니 일단 정원부터 줄여놓고 보자."라는 답을 주었다.
오늘 연세대 김우식 총장의 입각 내정 보도를 보며 내가 오명 입각 저지에 대해서 너무 과대평가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네티즌의 여론향방만을 읽다보니 잠시 착각을 한 것이다.
청와대 수석들, 국무총리, 장관,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자신들부터 서울대가 중심이 되어 인권유린적인 입시전쟁터로 썩어가는 한국의 교육의 모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조각 브리핑에서 교육부총리의 조건으로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반도의 대학에서 대학의 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라 외치고 있는 연세대학교 총장에게 5년간 교육부총리 직함을 주려나 보다.
오명 총장과 달리 김우식 총장은 개인적인 흠이 있는 드러난 사람은 아니다. 물론 연세대학교 연신원 처리 문제 때 반민주적인 행정을 펼치기도 했지만 오명 청장의 흠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오명 총장 입각 저지를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반성하는 점도 이 때문이다. 오명 총장의 입각을 반대한 이유가 뭐였던가? 오명 총장 개인의 흠집 때문이었던가? 아니다. 오명 총장이 순도 100%의 깨끗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경기고등학교 총동문회장, 그리고 사립대학교 총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각을 저지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교육부총리에 대학총장이 한두 명 임명되었던가? 그래서 그들이 한국의 교육개혁을 위해 한 일이 단 한 가지라도 있었던가? 그들은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을 모르며 관심도 없다. 오직 대학의 경쟁력만을 국가의 중대사라 인식한다.
나는 요즘 들어 서울대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울대의 문제점을 똑똑한 학생들을 멍청한 대학이 망쳐놓는다는 데에는 서울대 교수부터 국민의 99%가 인정하고 있다. 이 문제의식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문제점은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는 아메바 같은 학생들을 멍청한 서울대가 아예 구제불능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서울대 문제를 전자로 인식하면 서울대의 경쟁력 강화라는 대안이 도출된다. 지금 정운찬 총장이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서울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최고의 학생이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문제의식을 지니면 서울대의 경쟁력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의 경쟁 과정, 그리고 그 기준 자체를 문제삼게 된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런데 그 문제 많은 교육과정을 1등으로 통과했다면 그 학생의 머리나 심성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물론 이렇게 기존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실천적 측면에서 괜찮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한번 좀 곰곰이 따져보자. 문화산업 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화판에서 서울대 출신들은 발을 못 붙인다. 서울대 출신들이 영화판에 가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서울대 졸업장과 미국 유학이라는 화려한 간판 들고 상당한 인력이 영화판에 기어들어갔다. 2-3년도 안 돼서 죄다 퇴출되었다. 한국의 영화시장의 경쟁이 너무나 살벌하다보니 시험문제 맞추는 것에만 익숙해있는 서울대 출신들이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시장이 커지기 전에 일찌감치 들어가 있던 서울대 386세대와는 달리 90년대 학번들은 영화판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
나는 그나마 386세대들은 좀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울대학생들은 그때와도 다르다. 서울대학생생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서울대 입학생들의 계층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원천적으로 비판정신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정신이 없으면 창의력도 없다. 창의력이 없기 때문에 지금 서울대는 온통 고시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나마 가장 자신있는 게 시험문제 때려맞추기이니 여기에 몰려드는 것이다. 지금 현 서울대생들의 머리 수준으로 벤처창업이나 문화산업과 같은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 뛰어들면 농담이 아니라 다 떼죽음 당한다.
나도 그래서 내가 그나마 안타깝게 보고 있는 후배들에게 고시나 언론사 입사를 권하고 있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되는 그런 곳에 가야지 그나마 밥줄이나 쥐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만간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서울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호소문을 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나마 서울대 교수들은 서울대 전체가 온통 고시학원으로 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10명 중의 한 명 정도는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진정한 학자구나." 이런 존경심을 갖게 하는 교수들이 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로 나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대 학생치고 "저 친구 참 똑똑하다."라고 느낀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을 나의 편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강준만 교수가 문제제기한 서울대 문제 및 대학개혁 문제에 대해 서울대 학생들이 주도해서 뭐라도 하나 바꾼 게 단 한 가지라도 있었던가? 서울대 학생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했던가 아니면 반전반핵 운동을 주도했던가? 차라리 기존 언론를 뒤흔드는 인터넷 매체 창업 운동을 주도했던가? 그냥 주는 대로 먹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날이 갈수록 정신적으로 타락한 유한계급의 학생들이 서울대를 주도하고 있는데 서울대가 살아남겠는가?
이것은 정도의 차이이지 연대나 고대도 다를 바 없다. 자, 내가 위에서 열거한 대학교육의 문제점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로 해결되겠는가? 해결된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양말 벗고 신발 벗고 뛰어와라. 절대 불가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대학의 경쟁력은 대학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시키는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제도와 대학서열 전체를 뒤바꿔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김우식 총장 입각 반대 서명운동을 다시 한번 해볼까? 아니다. 나는 이제 그런 일 안 하기로 했다. 나 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계속 강조하지만 청와대나 내각에서 이런 정도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야지 뭘 할 것 아닌가? 어떻게 해서라도 시민사회에 욕을 좀 덜 먹는 대학총장 앉혀서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쫙 깔려있는데 입각반대운동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됐다, 됐다. 교육문제는 앞으로 니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번 내각의 80%를 서울대 출신들이 잡는 것 보고 알아봤다. 학벌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사했다고? 그래,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 자리를 서울대 출신이 80%를 잡고 연고대를 비롯한 100개가 넘는 전체 대학이 20%도 못 잡는 것을 정당한 능력으로 평가했다고 대통령이 당당히 외쳤다. 그럼 한국사회에서 학력차별은 없는 거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직접 능력으로 평가해서 서울대가 다 잡았는데 학력차별이 웬말이며 학맥인사가 웬말인가?
차라리 그냥 나는 김우식 교육부총리에게 호소하련다. 대학의 경쟁력으로 대학개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교 교육 전체를 뒤집어야 가능하다는 말, 이걸 놔두면 서울대든 연세대든 1년에 10조를 퍼부어도 외국의 3류대학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커밍아웃이나 하련다. 왜 너는 서울대 출신이면서 이런 문제에 관심 갖는 척하며 진보인 체 하냐는 비판이 많았다. 나와 같은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90년대 초반 학번 서울대 출신들은 생각보다 많다. 단지 내가 직접 발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따로 써야할 주제이지만 서울대 때문에 청춘을 잃어버렸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된다는 거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 졸업생들이 가는 길, 고시, 언론사, 대기업 등등의 영역을 벗어나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는 서울대 졸업생들을 거의 보지 못하지 때문에 인맥에서부터 손해를 본다. 서울대가 내일 당장 사라져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이들은 충분히 교육개혁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03/3/3(월)
"됐다. 됐다. 교육개혁 니들 마음대로 해라 - 서울대부터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새 정부의 5년 임기 교육부총리로 김우식 연세대학교 총장이 유력시 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주 오명 아주대 총장 내정설로 한바탕 소동을 벌인지 딱 1주일 만이다.
김우식 교육부총리님, 죽은 대학에 돈 퍼부어 업고 간다고 교육개혁이 되겠습니까? 교육개혁은 대학개혁이 아니라 전체사회개혁이나 다름없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주 부산에서 강준만 교수 강연회에 참석한 뒤 밤늦게 강준만 교수와 사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 나는 오명 내정자를 시민단체와 네티즌의 힘으로 저지한 것을 예로 들며, 이제 정말 서울대와 연고대로 중심이 되는 학벌 카르텔을 깰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혁 네티즌이 10만이라 치자. 이 10만의 네티즌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 통폐합론을 외치며 적극적인 서명운동을 하면, 6.8혁명 당시 소르본느 대학이 파리 국립대학으로 통폐합이 되었던 쾌거를 한반도에서 재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당시 프랑스의 국공립 통폐합은 소르본느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교수가 주도했으니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긴 다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이 국공립 통폐합을 시도할 가능성은 0%라 생각하면 된다.
내가 갖고 있던 낙관적인 견해는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네티즌이 교육개혁을 주도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오명의 입각을 막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명의 입각 저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더구나 교육개혁에 투철한 신념이 있는 교육부총리가 부임만 해준다면 산적한 교육개혁을 네티즌의 여론형성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금껏 교육문제는 공부 못한 놈의 잘못이라 단정짓던 버릇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꿀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이러저러한 근거로 나는 강준만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서울대 정원 축소론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서울대에 대한 여론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고, 서울대의 질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면 한번 네티즌과 시민단체가 모두 힘을 합쳐 피라미드식의 대학서열화를 철폐하고, 참된 고교 교육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강준만 교수는 지승호씨와의 인터뷰에서 "국공립 통폐합이든 뭐든 그건 오래 걸리니 일단 정원부터 줄여놓고 보자."라는 답을 주었다.
오늘 연세대 김우식 총장의 입각 내정 보도를 보며 내가 오명 입각 저지에 대해서 너무 과대평가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네티즌의 여론향방만을 읽다보니 잠시 착각을 한 것이다.
청와대 수석들, 국무총리, 장관,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자신들부터 서울대가 중심이 되어 인권유린적인 입시전쟁터로 썩어가는 한국의 교육의 모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조각 브리핑에서 교육부총리의 조건으로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반도의 대학에서 대학의 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라 외치고 있는 연세대학교 총장에게 5년간 교육부총리 직함을 주려나 보다.
오명 총장과 달리 김우식 총장은 개인적인 흠이 있는 드러난 사람은 아니다. 물론 연세대학교 연신원 처리 문제 때 반민주적인 행정을 펼치기도 했지만 오명 청장의 흠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오명 총장 입각 저지를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반성하는 점도 이 때문이다. 오명 총장의 입각을 반대한 이유가 뭐였던가? 오명 총장 개인의 흠집 때문이었던가? 아니다. 오명 총장이 순도 100%의 깨끗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경기고등학교 총동문회장, 그리고 사립대학교 총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각을 저지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교육부총리에 대학총장이 한두 명 임명되었던가? 그래서 그들이 한국의 교육개혁을 위해 한 일이 단 한 가지라도 있었던가? 그들은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을 모르며 관심도 없다. 오직 대학의 경쟁력만을 국가의 중대사라 인식한다.
나는 요즘 들어 서울대 문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울대의 문제점을 똑똑한 학생들을 멍청한 대학이 망쳐놓는다는 데에는 서울대 교수부터 국민의 99%가 인정하고 있다. 이 문제의식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문제점은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는 아메바 같은 학생들을 멍청한 서울대가 아예 구제불능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서울대 문제를 전자로 인식하면 서울대의 경쟁력 강화라는 대안이 도출된다. 지금 정운찬 총장이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서울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최고의 학생이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문제의식을 지니면 서울대의 경쟁력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의 경쟁 과정, 그리고 그 기준 자체를 문제삼게 된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런데 그 문제 많은 교육과정을 1등으로 통과했다면 그 학생의 머리나 심성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물론 이렇게 기존의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실천적 측면에서 괜찮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한번 좀 곰곰이 따져보자. 문화산업 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화판에서 서울대 출신들은 발을 못 붙인다. 서울대 출신들이 영화판에 가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서울대 졸업장과 미국 유학이라는 화려한 간판 들고 상당한 인력이 영화판에 기어들어갔다. 2-3년도 안 돼서 죄다 퇴출되었다. 한국의 영화시장의 경쟁이 너무나 살벌하다보니 시험문제 맞추는 것에만 익숙해있는 서울대 출신들이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시장이 커지기 전에 일찌감치 들어가 있던 서울대 386세대와는 달리 90년대 학번들은 영화판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
나는 그나마 386세대들은 좀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울대학생들은 그때와도 다르다. 서울대학생생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서울대 입학생들의 계층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원천적으로 비판정신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정신이 없으면 창의력도 없다. 창의력이 없기 때문에 지금 서울대는 온통 고시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나마 가장 자신있는 게 시험문제 때려맞추기이니 여기에 몰려드는 것이다. 지금 현 서울대생들의 머리 수준으로 벤처창업이나 문화산업과 같은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 뛰어들면 농담이 아니라 다 떼죽음 당한다.
나도 그래서 내가 그나마 안타깝게 보고 있는 후배들에게 고시나 언론사 입사를 권하고 있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되는 그런 곳에 가야지 그나마 밥줄이나 쥐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만간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서울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호소문을 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나마 서울대 교수들은 서울대 전체가 온통 고시학원으로 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10명 중의 한 명 정도는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진정한 학자구나." 이런 존경심을 갖게 하는 교수들이 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로 나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대 학생치고 "저 친구 참 똑똑하다."라고 느낀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을 나의 편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강준만 교수가 문제제기한 서울대 문제 및 대학개혁 문제에 대해 서울대 학생들이 주도해서 뭐라도 하나 바꾼 게 단 한 가지라도 있었던가? 서울대 학생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했던가 아니면 반전반핵 운동을 주도했던가? 차라리 기존 언론를 뒤흔드는 인터넷 매체 창업 운동을 주도했던가? 그냥 주는 대로 먹고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날이 갈수록 정신적으로 타락한 유한계급의 학생들이 서울대를 주도하고 있는데 서울대가 살아남겠는가?
이것은 정도의 차이이지 연대나 고대도 다를 바 없다. 자, 내가 위에서 열거한 대학교육의 문제점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로 해결되겠는가? 해결된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양말 벗고 신발 벗고 뛰어와라. 절대 불가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대학의 경쟁력은 대학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시키는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제도와 대학서열 전체를 뒤바꿔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내가 김우식 총장 입각 반대 서명운동을 다시 한번 해볼까? 아니다. 나는 이제 그런 일 안 하기로 했다. 나 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계속 강조하지만 청와대나 내각에서 이런 정도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야지 뭘 할 것 아닌가? 어떻게 해서라도 시민사회에 욕을 좀 덜 먹는 대학총장 앉혀서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쫙 깔려있는데 입각반대운동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됐다, 됐다. 교육문제는 앞으로 니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번 내각의 80%를 서울대 출신들이 잡는 것 보고 알아봤다. 학벌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사했다고? 그래,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 자리를 서울대 출신이 80%를 잡고 연고대를 비롯한 100개가 넘는 전체 대학이 20%도 못 잡는 것을 정당한 능력으로 평가했다고 대통령이 당당히 외쳤다. 그럼 한국사회에서 학력차별은 없는 거다. 상고출신 대통령이 직접 능력으로 평가해서 서울대가 다 잡았는데 학력차별이 웬말이며 학맥인사가 웬말인가?
차라리 그냥 나는 김우식 교육부총리에게 호소하련다. 대학의 경쟁력으로 대학개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중고교 교육 전체를 뒤집어야 가능하다는 말, 이걸 놔두면 서울대든 연세대든 1년에 10조를 퍼부어도 외국의 3류대학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커밍아웃이나 하련다. 왜 너는 서울대 출신이면서 이런 문제에 관심 갖는 척하며 진보인 체 하냐는 비판이 많았다. 나와 같은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90년대 초반 학번 서울대 출신들은 생각보다 많다. 단지 내가 직접 발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따로 써야할 주제이지만 서울대 때문에 청춘을 잃어버렸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된다는 거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 졸업생들이 가는 길, 고시, 언론사, 대기업 등등의 영역을 벗어나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는 서울대 졸업생들을 거의 보지 못하지 때문에 인맥에서부터 손해를 본다. 서울대가 내일 당장 사라져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이들은 충분히 교육개혁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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