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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박사해?

이병호 2002.10.18 16:04 조회 수 : 3758 추천:150

출산은 잘 하셨냐고 지난 주에 메일을 보낸 학생도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나도 답답하다. 그리고 무료해서 이렇게 글을 올린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Santa Barbara를 떠나 LA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현 엄마의 출산을 위해서인데, 이곳 병원에서 낳을 예정이다.

Santa Barbara 병원비보다 이곳 병원비가 싸기 때문에.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엄청 비싸지만.

소위 원정 출산은 정말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 분만을 해야만 하고 그 다음날 바로 퇴원해서 2시간 운전해서 Santa Barbara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사촌 처제 식구가 너무 잘 해주어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주인이 한국에 가서 비어있는 집에 들어와 지내며 고맙게 쓰고 있다.

컴퓨터도 쓰고. 하지만, 이리저리 어지럽히기 싫어 내가 받는 메일들 중 첨부 파일은 열어보지 않는다.



집사람이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한다. 백화점 구경도 가고 코리아 타운 마켓들도 다니고, 베버리 힐스 로데오 거리도 가 보고...

하지만, 피곤해 많이는 못 돌아다니기 때문에 집에서 그저 TV를 보고 비디오를 보고 한다. 한국 영화도 몇 개 빌려 봤는데, 정말 잘 만들더군...

요새 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책도 사 보고...



하지만 상당히 무료하다. 게다가 의사에 대한 불안감도 좀 있고. 나이가 많은 분이라 경험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현이는 똑똑하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이겠지만. 벌써 영어도 좀 하고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여기 LA에 와 있는 동안 지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현이가 요새 "여자도 박사해?"라는 말을 가끔 해서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다.

아빠는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논문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엄마는 집안 일만 하니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또 나올 아이도 딸인데(한국에서 부터 알고 온 것처럼), 딸 둘을 둔, 속된 말로 소위 딸기 아빠로서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지현 엄마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자신도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겠다고 말한다.



집사람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딸들을 평범한 주부로 살게 하긴 싫다.

뭐 능력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기대는 않겠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도 행복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큰 일을 하길 바라는 것이 아빠된 심정이다.

그런데, 지현이는 벌써부터, 크면 친구 누구와 결혼할 거라는 둥 하니 걱정이다.

나는 시시한 결혼이라면 하지 말고 자기 일을 하며 혼자 살라고 하고 싶은데...



내가 석사과정에 있을 때 어느 교수님께서 정년퇴직 고별 강연을 하신다고 해서 동원되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좋으신 분이기는 한데, 그런데 고별 강연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주제는 인생무상이었다. 지나고 나면 다 쓰잘데기 없는 것 들이다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이었다.

어떻게 젊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실까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씀은 맞는 말씀이긴 할 것이다.

부도 명예도 권력도 뭐 별거는 아닐 것이다.

나도 서울대 교수가 되기 전에는 그것이 대단한가 싶었지만 되고 나니 뭐 별 것 아니다. 이는 나보다 지현 엄마가 더 그렇다고 말한다.

펠로우란 것이 대단한가 싶긴 하지만, 그리고 외국사람들이 나보고 젊은 나이에 되었다고 칭찬도 해 주곤 했지만, 뭐 사실 별 거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는 버틀란드 러셀이 우상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책은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책을 사 읽었다.

이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기독교에 반대했고 철저한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러셀의 딸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딸이 쓴 아버지의 전기가 있는데, 이런 식의 내용이 있다. 내가 그대로는 기억 못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딸이 아빠에게 "아빠, 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대해줘야 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네 할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그러면 딸이 "할아버지한테는 누가 그러라고 했는데?" 라고 물으면,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 하다가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셨어."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이런 식이었다.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해?" 하면,

"그건, 네가 그렇게 행동해야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다른 사람들은 상관 안해." 하면,

"네가 그렇게 행동해야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야."

결국 나의 아버지는 보다 신심이 두터웠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철저한 기독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절대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사실 따지고 들면 모든 것에 의미가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분처럼 젊은 나이에 혹시라도 인생을 달관한다면 이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식물 인간이 되었을 때 죽게 해달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 사람들이 그런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바란다.

젊어서 꿈이 없고, 그걸 이루어가려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살지는 못해도, 꿈을 갖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도전하기 바란다.



Boys and Girls,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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