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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맞으며

이병호 2002.09.05 00:39 조회 수 : 3779 추천:112

이제 여러분들은 개학을 맞았다. 코스 웍이 끝난 사람들은 별 상관 없겠지만.

떠난 사람도 있고 또 석사과정 두 명은 새로 입학을 하고...

학기가 시작되면 더 바빠지기 때문에 사실 방학동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학기 중엔 졸업 논문 심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고.

어쨌든, 여러분들은 새 학기를 맞으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일해주기 바란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특히 몇몇 학생들은 일이 겹쳐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웃풋으로 나오는 결과가 작년의 이맘 때보다 적은 것도 사실이다. 내년의 논문이 올해만 못할 지 모른다는 우려다.

발전은 못해도 현상유지는 해야 할 텐데...



서울대는 아군이 없다. 별로 잘한다고 해 주는 사람도 없고 잘 되어야 한다고 밀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뜻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서울대에 또 감사가 나올 것이라는 뉴스만 들리는군…

지역할당제로 호감을 얻는 정책을 제안함에도 불구하고…



지역할당제는 고급과외만 많이 받는 지역에 편중되는 입학생 분포를 좀 다양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다. 그리고, 소위 부자집 학생들이 유리한 점을 다소 개선시킬 수는 있고.

그런데, 왜 우리 방에는 가난한(?) 학생들만 들어오는 지 모를 일이다.

이젠 차를 모는 학생도 별로 없고, 스키장에 엠티를 가려해도 교수건 학생이건 콘도가 없어 학과에서 갈 때 같이 가야하고…



하여튼 다시 지역할당제 문제로 돌아가서…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차이가 있고 똑같을 수는 없다. 지역할당제도 어차피 각 지역에서 똑똑한 녀석들을 뽑는 것이고…

전에 모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학력을 철폐한다며 어느 대학 졸업자인지, 학점이 어떤지를 묻지 않고 뽑은 적이 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결국 일종의 테스트를 해서 뽑았는데, 그 테스트가 아이큐 테스트 비슷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머리 좋은 사람을 뽑은 것이다. 뭐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회사로 봐서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할 테니), 학력 철폐라는 위장을 하지 않았었으면 하는 것이다….

종합영어에 있던 글이 생각나는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아무리 부르짖는 사람도 자신이 아플 때에는 모든 의사가 똑같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는 …



내가 대학원 학생일 때는, 내가 교수가 된다면 일을 고루 나누어 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교수가 되고 보니, 그럴만하지 못하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그리고 논문을 내야 하는 일들이 급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라, 결국은 잘 모르는 학생을 시간을 갖고 훈련시켜 그 일을 하게 하기 보다는 잘 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 하는 학생들은 바쁘고 또 불만이 많을 테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을 키울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여러분들이 스스로 준비된 상태가 되도록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전문 지식을 넓히고, 각종 소프트웨어 사용법들을 틈틈이 익히고… 심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상품 가치를 계속 높여가야 한다. 공산주의가 아닌 경쟁 사회에서 살려면 야속하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다.



나도 8월 말까지 해야 하는 일들 중 아직 못 끝낸 것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다 끝냈다. 못 끝낸 일에 대해 독촉 메일도 받긴 했지만…

오늘은 추천서를 하나 썼다. 어떤 분이 어떤 학회에서 주는 큰 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며 추천서를 부탁했는데, 이 양반이 워낙 유명한 분이기는 하지만, 바이오그래피를 보니, 그만큼 스스로의 선전도 잘 해온 것 같군.

논문이 300 편 이상, 초청 발표가 60 회 이상, 책 에디팅이 5 권, 인용이 1500 회 이상, Physics Today, Nature 같은데 글이 실렸다는 둥, IEEE Spectrum에 인용되었다는 둥, 뭐 이런 식이다.

하여튼 열심히 사는 분이다.



미국에서는 돈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에, 성적이 좋고 똑똑한 학생들 중에서도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산업체로 바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학부 성적이 좋아도 굳이 석사나 박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급여가 적은 대학 교수는 (방학 동안에는 월급도 안 나온다.), 그저 공부나 연구를 적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어쨌든, 개학이 되어서 내가 안식년(연구년)임을 십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9월을 맞는 것이 흐뭇하다.

여긴 시미스터 시스템이 아니라 쿼러 시스템이라서 9월 말에 개학이다.

Pochi Yeh 교수님은 Quantum Electronics라는 대학원 과목만을 하나 강의하게 되는데, 자신이 출장갈 때 8 시간 정도를 나보고 해달라는군.

문제는 첫 주부터 나보고 해달라는데, 강의계획서와 어떤 것을 배우면 좋겠냐는 설문지를 알아서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아마 이 설문지를 첫 시간에 돌리는 모양이다. 대학원 과목이므로…



교재로 Yariv의 Optical Electronics를 쓴단다. 나는 이 책을 한 6,7 년 전에 학부 4학년 교재로 썼다가, 그 후에는 Saleh & Teich 책으로 바꿨다.

Yariv의 책은 수식 같은 곳에 오류가 많다. 그래서,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별로 좋은 책은 아니다. 어떤 미국 교수는 자신은 Yariv의 책을 본 후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이 참고 문헌으로 보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Yeh 교수도 오류가 많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노이즈에 대한 설명 같이 다른 책에 없는 내용들이 있어 맘에 든단다.

Yeh 교수는 Yariv의 제자이니 뭐 편한 책을 사용하고 싶기도 하겠고...

내가 서울대에서 처음에 이 책을 사용했던 것도 유학할 때 이 책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 강의한 교수가 칼텍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대학원 과목에는 수강 인원이 5명 정도나 심하면 그 이하가 되기도 한단다.

어려운 것들을 안 하려 하기 때문에...

뭐 어쨌건, 이곳 대학원 학생들 수준이 어떠한지 보고 싶다. 기대된다.



미국에는 수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이곳도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는 않다.

미국의 유수 대학들이 학문을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는 가만 있어도(좀 심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기를 쓰고 똑똑한 학생들이 와 준다는 점이다.

뭐, 우리 연구실도 여러분처럼 똑똑한 학생들이 기를 쓰고(?) 와 주어 이렇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여러분처럼 훌륭한 학생님들을 모시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은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학생들을 뽑는 곳이라면 (다행히도 외국에 나가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잘 나가는 대학들은 세계를 대상으로 뛰어난 학생들을 가려 뽑는 곳이다.

물론 교수도 마찬가지고. 한국 사람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을 뽑느냐, 세계 모든 지역 출신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을 뽑느냐(Yeh: 대만, Dagli: 터키, Gu: 중국, Javidi: 이란)...





* 어려운 시절



이곳 IT 산업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안 좋고, 언제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중 몇몇도 잘 알 어떤 유명한 분은 회사가 문을 닫아 대학교수 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곧 있을 어떤 학회의 학회장은 회사에서 레이오프 되었다고 한다. 학회 참석도 자비로 해야 할 것이다.



Yeh 교수님 회사는 다채널(80 채널?) 분산보상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경기가 안 좋아 다시 펀드 레이징을 추진하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그게 나을 지도...



나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꽤 보았다.

제조업은 중국 같이 인건비 싼 곳에서 하는 것이고, 미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글쎄 금융, 보험 같은 서비스업 또는 무기나 항공기, IT 분야처럼 하이텍 쪽일 텐데, 그 IT라는 것이 결국 거품이 아니었나 싶고…

이곳에서는 궂은 일들은 거의 모두 인건비가 싼 히스패닉들이 한다. 결국 세계에서 똑똑한 이공계 인력들은 미국으로 와서 미국의 기술 발전을 이끌어 주고, 가난한 멕시칸들은 미국으로 와서 굳은 일을 하며 서포트해준다.

정말 미국은 복 받은 나라다.





* Open Society



미국이 잘 사는 이유는 땅도 넓고 자원도 많고 돈도 많고, 또 세계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계속 유입되고… 뭐 이런 것들 때문이겠지만, 또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합리적인 사회라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것들은 일반적인 미국민들은 별 관심도 없고, 다만 미국이 지고의 선이라고 믿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추한 그리고 비합리적일 수 있는 일들은 최고 정치가들이 알아서 해주면 되고, 일반적으로 미국내의 사회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역사적으로는 서부 개척 시대에 상대방도 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도 있었을 것이고, 또 현재는 변호사가 넘쳐나는 소송의 나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으로 소송에 휘말리면 망한다는 개념이 있어 그렇게도 하겠지만, 사회가 상당히 합리적이고 오픈되어 있다.



내가 이곳 교회에서 놀란 것은 목사님이 휴가로 쉬어서 대신 설교를 하러 외부에서 온 목사님이 흑인이었던 점이다. 나이 많은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의 혼란스럽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일 텐데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한국 분은 아이가 미국 학교에서 동양인의 약간 찢어진 듯이 가장자리가 올라간 눈으로 놀림을 당해 이를 항의했고 상대학생 부모는 그걸 해명하느라고 지극정성으로 고생을 한 일을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인종 차별이라는 것은 큰 범죄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고 인종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직장에 다니다가 한국에 돌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 장벽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곳에서 아이를 기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이미 초등학교 때에도 학교 내에서는 서로 잘 어울려 노는 것 같지만, 교문을 나서자마자 피부 색에 따라 그룹이 나뉘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믿다가 친하게 지내던 백인 친구들이 멀어져 감을 느낄 때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래도 이만한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이야말로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이다.

중국 같은 곳이 엄청난 인구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지만, 합리적인 내부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곳 TV에서는 미해결 문제를 법의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30년 씩 된 사건도 사소한 단서물까지 다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잘못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여튼 계속 따지면 된다.



서울대에서 어떤 교수님이 학교 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문을 닫지 않고 출발해서 닫으라고 했더니 덥다며 무시하는 것을 보고 격분하셨다는 일이 생각나는 군.

이곳에서는 그런 일은 물론, 사람이 채 앉지 않았는데 버스가 떠나는 일 같은 것도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승객이 다쳐서 소송이 걸리면 버스회사건 기사건 끝장이 난다고 봐야 한다…



어쨌거나, 그런 점에서 미국은 잘 짜여진 사회이고, 또 다양한 인종에게 오픈되어 있다는 것이(속내는 어떻건 간에) 계속 사회의 발전을 위한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창이다.





* 용, 난다.



각설하고…

좀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이곳은 이번 월요일이 휴일이었다. 그래서, Lake Tahoe와 San Francisco로 여행을 다녀 왔다.

내가 그 동안 안식년 답지 않게 너무 관여를 해서 그런지, 하루 이틀 잠잠하니 아픈 것이 아니냐는 둥의 이메일도 오는 구만…

이틀 동안 이메일을 안 보니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같더군…

어떤 글이 생각나는군…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며 일에 치여 살다가 미래가 되면 과거를 후회하고 해서 결국은 현재를 살지도 못하고 미래를 살지도 못한다는…

하여튼 지난 밤 새벽 두 시에 돌아왔다.

Golden Gate Bridge를 한 쪽 산에 올라가서 보는 것은 정말 언제 봐도 멋지다. 뭔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한 때는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도 이곳에 올라갔었다. 아마 김 기현 박사, 이 홍석 박사, 정 윤찬 박사였던 것 같은데.



이곳에 올 때마다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데, 정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고’이다.

여러분도 지금을 열심히 살길… 곧 나이가 들 테니.

신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제한을 주었다. 하나는 speed of light이다. 이보다 빨리 정보가 전달될 수는 없다는 건데, 뭐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더 심각한 제한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처럼 젊어서는(?) 그런 걸 못 느끼겠지만, 나처럼(?) 좀 나이가 들면 그걸 느끼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 노안이 올 때 그걸 실감한다고 한다…

하여튼 젊어서 열심히 살기를 …



이곳에 올 때 산타바바라는 산타 할아버지가 사는데냐고 묻던 지현이가 벌써 많이 큰 것 같다.

내 영어 이름도 지어줬는데, 하워드다. 이는 How old are you에서 유래된 발음이다.



아빠가 맨날 논문만 보고 책만 보고 하는 걸 보더니, 급기야, 지현이도 최초의 저서를 만들었다. 그림들에 색깔을 칠해 테이프로 붙여 만든 책인데, 그 제목은 “용, 난다”이다. 영어로는 “Dragon under fly (파리에 깔린 용?)”이란다. 내용 중에는 “용이 날아요. 사람이 나는 것처럼 용이 날아요”, 뭐 이런 구절도 있는데, 내가 그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revise하지 않더군.

여러분도 새 학기에는 용이 나는 것처럼 날아나 보는 것이 어떨지?

열심히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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