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이종필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조교수
황우석 교수팀 논문 조작의 전말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정부는 13일 제1차 국가석학 지원사업 대상자 11명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연구자를 선발해 개인 연구비를 해마다 1억~2억원씩 최장 10년간 지원하는 것이다. 언론들은 황우석 사건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이 이 사업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업은 정부가 아직도 황우석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나 인재양성 정책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학은 그 자체로 존재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 노벨상이 무슨 올림픽 금메달마냥 대표팀 합숙시킨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노벨상이 없는 대기학이나 해양학은 어쩔 셈인가. 세계적인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재산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노벨상만 쫓아다니다가는 정말로 큰 ‘국익’을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번 대상자 선정에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피인용지수를 심사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현실을 얼마나 냉정하게 평가한 것이지 의문이다. 교육부 쪽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5천회 정도의 피인용지수를 보인다며, 이번 대상자들이 이에 아주 근접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노벨상은 업적 중심으로 수여되기 때문에 특정 업적과 관련한 주요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더 중요하다.
이번에 두 명이 지원대상에 포함된 입자물리학을 보면, 199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트후프트-벨트만의 1972년 논문 한 편이 지금까지 약 2200번 인용되는 등 수상자 대부분의 단일 논문이 2000번 정도 인용된 것으로 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입자물리학자 중에서 아직 단일 논문으로 1천회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 인용된 경우는 고 이휘소 박사(1천1백여 회) 말고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선뜻 수긍하기 힘든 기준으로 노벨상을 들먹이는 것은 배아줄기세포로 당장 임상시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령 노벨상 받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해도 이 정도의 지원으로는 어림없다. 개인 연구비가 1년에 1억~2억원이면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1년에 20억원 남짓 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은 고바야시-마스카와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기기 위해 수백억원을 투자해서 1990년대 말에 최첨단 입자 검출기를 건설했다. 농담 삼아 일본은 정말 돈으로 노벨상 ‘산다’고 하는데, 1년에 겨우 몇억원씩 몇몇에게 뿌리는 것만으로 노벨상을 기대하는 건 심하게 말해 ‘도둑놈 심보’다.
미국이 스푸트닉 충격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대학의 수학과와 물리학과에 대대적 지원이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가장 절박한 문제는 각 분야별로 핵심연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인력수급 구조는 값싼 중저급 인력의 대량공급체계라고 할 수 있다. 대학도 경제논리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급속히 황폐화되고 있다. 교수당 학생수는 미국의 두 배에 이르고 비정규직 강사들이 떠맡는 수업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반적으로 규모가 축소돼, 기초과학 강의의 질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하되고 있다.
적어도 30년 앞을 내다보고 자체적으로 고급인력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몇푼 안 되는 돈으로 벌이는 몇몇 스타 과학자 중심의 생색내기식 사업은 또다른 황우석 사태를 키울 뿐이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643 | 제 754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6.11 | 10 |
3642 | 제 753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6.10 | 8 |
3641 | 제 752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6.10 | 6 |
3640 | 제 751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5.01 | 41 |
3639 | 제 750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4.15 | 27 |
3638 | 제 749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4.11 | 29 |
3637 | 제 748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4.11 | 27 |
3636 | 제 747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3.20 | 54 |
3635 | 제 746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3.13 | 53 |
3634 | 제 745차 그룹미팅 | 최현규 | 2025.02.26 | 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