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종강도 되고, 제주도에서 바람을 쐬고 온 학생들도 있고 하니, 들뜰 때일 텐데, 종강회식을 하는 것은 적극 권장한다. 하지만, 이는 새로 추스리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방학이란 수업에 대한 부담감 없이 열심히 일하는 기간이다.
휴가를 원하는 학생은 방장과 상의해서 날짜를 잡길.
나는 계속 일이 많다.
이곳도 방학이 시작되었고 교수들도 많이 여행을 다닌다.
나는 Dagli 교수님과도 가족 식사를 했고, Yeh 교수님과도 가족 식사를 했으니, 공식적(?)인 일정은 마친 셈이다.
하지만, 실은, Yeh 교수님과 책을 편집하는 일이 시작은 되었는데 갈 길이 멀군. 빨리 끝내야 할 텐데, 부담이 많이 된다. 나서서 나를 도와주겠다고 자청하는 학생도 없고…
Yeh 교수님은 며칠 후 한국을 잠시 방문하신다. 9월에도 한국을 방문하실 것이다. 사실 9월에는 내가 외국 분 세 분을 초청했기 때문에 좀 바쁠 것 같다.
Yeh 교수님은 이번에는 문정왕후 이야기를 들고 나와서 나를 괴롭게 했다. 글쎄, TV 드라마에서 좀 본 것 같긴 한데, 그게 어떻게 되는 이야기였더라…
이 양반은 어디선가 한글 발음 기호표를 구해와서 한글 읽기를 공부하고 있다.
Yeh 교수님은 나의 학술활동에 대해 어떤 것이든 적극 지원해주겠다고 하니,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사실, 이 곳에서 제일 부러운 것은 거의 모든 저널의 논문을 e-library로 연구실 컴퓨터로 파일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좋다. 바닷물이 차서 수영은 못 하지만, 학생들은 툭하면 보드를 들고 학교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한다. 그런데, 공부에 바빠 그런 사치를 즐길 수 없다고 하는 학생들도 많긴 하더라. 세상에 이런 곳이 몇 곳이나 있겠는가. 하기는 전에 대만의 카오슝의 국립 중정 대학에 가 봤더니, 그 학교도 바닷가에 있더군.
서울대학교도 참 좋은 곳이다. 공기 좋은 산자락에서, 경치도 좋고 (비록, 스모그로 덮인 풍경이지만), 진달래, 개나리 필 때나, 단풍이 들 때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건 그렇고, 여러분들이 논문 초안을 써서 내게 준 것들도 있고, 외국 논문 심사 의뢰는 정말 끝도 없이 들어 오고, 당장 내야 하는 컨퍼런스 논문이 다섯 개 있고, 거기다가, 한국의 다른 교수님들과 책을 쓰는 일이 1 년여 묻혀있다가 다시 activate되었다…
하여튼, 한 마디로 나도 바쁘니, 여러분도 바쁘길 기대한다.
졸업생 중에는 성공하는 연구원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는 경영인도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지난 번 한국에 다녀 오다가 공항에서 앤드류 그로브의 ‘승자의 법칙’이라고 번역된 책을 사서 읽었다. 원제는 ‘Only the Paranoid Survive’인 모양이다. 나온 지는 오래 된 책인데, 아마 최근 번역본의 개정판이 나온 모양이다.
Grove는 화공학 박사 출신이고, 인텔을 공동 창업했고, CEO 등을 역임했다.
내가 학생일 때는 이 양반이 쓴 반도체 소자 책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 된 책이라 어디서도 교재로 쓰는 곳이 없을 테지만.
여러분들이 흥미 있어 할 이야기가 많더군.
펜티엄의 부동소수점 오류 문제가 생겼을 때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더군.
가장 key가 되는 예화는 인텔이 메모리 칩을 처음 만들고 판매하다가, 일본의 추격을 받고 밀리게 되자 어떻게 과감히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메모리 사업을 포기하고 마이크로 프로세서 사업으로 전환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예가 있던데, 예를 들어 무성영화 시절의 찰리 채플린이 유성영화가 나오자 유성영화는 곧 없어질 것이라고 오판하고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이야기라든가,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여러분들도 적절한 때에 현명한 판단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공동설립했을 때, 그는 무한한 가능성과 최고의 수직 성장을 거듭하는 개인 컴퓨터 회사를 창조하는 것이 목표였다. (중략)
잡스가 1985년 애플을 떠났을 때, 그는 어느 모로 보나 똑 같은 성공담을 재창조하려고 시도했다. (중략)
그러나, 잡스가 야심차고 복잡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에, 그는 자신의 대부분의 노력과 성과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중요한 개발 과제를 무시하고 있었다. 즉, 그와 동료들이 밤낮으로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대량생산체제를 갖춘데다가 용도가 광범위하고 매우 편리한 사용자 그래픽 인터페이스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가 시장에 출현했던 것이다. 윈도는 실제로 넥스트의 인터페이스는 제쳐두고라도, 매킨토시보다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와 주변 응용기기를 잘 통합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윈도는 저렴한 가격뿐만 아니라 성능도 우수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점으로서 1980년대 후반까지 수백 명의 PC 제조업자들이 사용하던, 점차 강력해지고 있던 개인 컴퓨터에 작동되었다.
(중략)
마치 잡스와 그의 동료가 넥스트를 시작했을 때 타임 캡슐로 들어가버린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 경쟁상대라고 여겼던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들이 타임 캡슐에서 나왔을 때 그 경쟁상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고,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잊고 있었을지라도, 넥스트는 전략적 변곡점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넥스트의 상품은 제대로 유행 한 번 못 하고 추락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