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하늘과 도덕률 (1)

2007.11.09 06:34

이병호 조회 수:3792 추천:72

오늘 고려대의 워크샵에 가서 발표를 하고 왔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어떤 교수님이 올해 발표하시는 일이 다 끝났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올해 몇 건 더 발표를 해야 하는지 세어 보니… 9 건이 남았다. 물론 여러분들이 훌륭한 아웃풋을 내니 발표를 하고 다니는 것이긴 하지만, 나도 왜 이리 사나 싶다… 여러분도 놀지는 말길…

내가 쓰는 글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있고 또 내가 언급하는 책을 찾아 읽는 열성 팬(?)도 있는 것 같아 또 글을 하나 올린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도덕률”… 이건 내가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윤리 교과서에서 읽은 구절이다. 그 유명한 철학자 칸트가 했다는 말이다. 그런 역사적인 인물이 했다는 말이니, 당연히 나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고 부담만 팍팍 주는 말, 또, 그저 아름다운 수식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지난 번 미국에 다녀 올 때 시카고 공항에서 "The Language of God"이라는 책을 사서 동경까지 가는 길에 읽었다.
Francis S. Collins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우리나라에 아마 번역판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human genome project의 총 책임자로서 human genome map이 완성되었을 때 이를 발표하던 미국 클린턴 대통령 옆에 서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때 클린턴의 연설문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Today, we are learning the language in which God created life. We are gaining ever more awe for the complexity, the beauty, and the wonder of God’s most divine and sacred gift.” 이 책의 제목은 이 연설문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아니, Collins가 그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다고 하니, “Language of God”이란 말이 당초 Collins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오래 전에 철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좀 자유스러운 자리니 그리 하셨겠는데, 이 분은 입에 거품을 무시고(?) 철학이 모든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셨다. 아울러 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적다는 사실을 매우 개탄스러워 하셨다. 이런 분의 눈엔 공학은 단지 직업교육으로 비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철학’이 한낱 우스개 거리(좀 심한 표현이지만)가 될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건 진화론자 중 일부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며 요새 유행하는 “The God Delusion”의 저자인 Richard Dawkins로 대표되는 생물학자들이다. 또, 요새 선전을 많이 하는 책 “믿음의 엔진”의 저자 Lewis Wolpert란 생물학자가 그런 예인 것 같다. 이 사람들의 논리는 인간은 진화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모든 생각과 감정은 뇌세포의 전기적, 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하는 이타심도 결국 자연의 선택에 의해 정해졌다는 논리다. 그런 이타심을 좀 가진 개체들이 속한 무리가 그렇지 않은 무리들보다 전체적으로 더 많이 살아남기 때문에 그런 이타적 생각을 할 줄 하는 인류가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죽으면 그 개체에게는 모든 게 끝이다. 인간의 모든 철학적 문제에 해답이 제공된다. 모든 게 뇌에서 만든 환상과 뇌가 만든 논리이며, 당초 인간은 가치란 것도 없고, 의미도 목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면 이건 정말 비극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곳곳에서 추천도서 목록에 오르고, “이기적 유전자”는 서울대가 만든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추천도서 목록에도 들어 있다.

고등학생 시절 버틀란드 러셀이 나의 우상이었다. “서양철학사” 같은 골치 아픈 책 말고는 그 사람의 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읽었다. 이 사람은 불가지론자, 또는 결국은 무신론자였다. 저서 중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도 있다.
그런데 그 딸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딸이 쓴 아버지 전기가 있는데, 내게 지금 그 책이 없어 똑 같이 옮길 수는 없지만 대개 이런 식의 글이 있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해요?”하면, 다른 아버지들은 “그건 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네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답한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해요?”하면,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야.”고 말했다. 그러면, 내가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다른 사람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어요.”하면, 내 아버지는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야.”라고 다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내 아버지는 신앙심이 좀 더 돈독한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게 철학의 한계일 것이다. 이에 위의 위대한 생물학자들이 그 답을 제시했다. 그것은, “당신은 자연의 선택과정과 사회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뇌가 남을 생각하는 기능을 갖게 만들어 졌고, 소위 도덕적인 개념을 갖도록 뇌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게 속 편할 거야.” 뭐 이런 식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도둑질을 하든 살인을 하든 실은 관계 없다는 거다. 즉, 실은, 선과 악이란 게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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