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동기부여 + 환경

2009.08.25 00:09

이병호 조회 수:3722 추천:10

내가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해들 한다면... 잘 지내고 있다.
여기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어 가끔 아이들의 성화에 데리고 가야 하고, 얼마 전엔 별똥별을 봐야 한다는 선배에 이끌려 밤에 산에도 올라가고,
프리웨이를 나오다가 사슴과 충돌할 번도 하는 등...

우리 아이들은 모레부터 개학이다. 첫째 아이는 영어 시험을 패스하여 영어 랭기지 클래스가 없는 학교로 배정 받았다. 둘째 아이는 긴장을 좀 하고 있다.

내가 유유자적 하는 줄 알겠지만 여전히 바쁘다.
한국에 학회 관련 내가 관여해야 하는 일들도 아직 많고(김성철 교수, 민성욱 교수, 박재형 교수 등이 나를 도와 주고 있지만),
여기서도 지난 주엔 두 번이나 미국광학회와 전화회의를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여기 온 환영회를 미국광학회장의 차를 타고 산호세에 가서 미국광학회 직원과 10월에 할 학술회의에서 VIP들, 펠로우들 등등 초대할 장소들에 답사 가는 것으로 겸사겸사 치루었다.
내가 한국에서 학회 사전 답사를 많이 가 보았지만 미국 와서까지 그리 될 줄이야...

여기 그룹 미팅도 두 번 들어갔고, 여기 유학 온 한국 학생들과도 간단히 식사를 했고, 여기 사는 내 선후배들과도 만나고 한국에서 출장온 동기도 만나고, 지난 주엔 방지훈과 김주환 박사 등이 내 집에 왔었다.
방지훈은 서니베일에 있는 새 직장으로 옮기어 열심히 살고 있다. 파트 타임으로 대학원 공부도 하면서... 김주환 박사는 한국 사람들과 만나는 걸 가급적 피하고 미국 경험을 제대로 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여러분 중 학회 나왔다가 스탠포드 대학 구경을 한 사람이 여럿 있지만, 그 구경이란 건 광장과 교회, 후버 타워, 로댕 가든  뭐 이런 데 들리는 거다. 물론 훌륭하다.
그런데, 사실 기가 죽는 것은 공대 쪽 건물들(관광 코스는 아니지만)에 와 볼 때다. 건물 명이 이렇다: 윌리엄 (빌) 게이츠 건물, 폴 앨런 건물, 휴렛 건물, 팩커드 건물, 제리 양 건물 등..
내 사무실은 폴 앨런 건물에 있다.

상식이지만, HP, 야후, 구글, 시스코 등등이 스탠포드에서 탄생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가는 많은 회사들이 여기에서 생길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내가 미국광학회장에게 물으니, 답은 이렇다.
첫째는 건학 정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졸업생들이 학계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로 professional world에서 일하는 것을 장려한다는 게 스탠포드 초창기부터의 방향이었다고 한다.
둘째는 똑똑한 학생들이 온다는 거다. 이건 솔직한 대답이다. 이 분 말로는, 스탠포드 출신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스탠포드에서 연구한 결과를 사업화 하는 것은 그 비율이 아주 적다는 거다. 즉, 똑똑한 사람들이 왔고 또 그런 활동을 하는 걸 고무시키는 교육을 받고 주위에 크게 성공한 예들이 있으니 그리 하려 한다는 거다.
마지막으로는 여기가 살기 좋은 동네라 부자가 많고 펀딩 시스템이 좋다는 거다.

어디서나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었느냐 하는 거다. 여러분이 고등학생 시절에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부모님이 시키고 학교나 학원에서 아무리 시켜 봐야 그게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목표 의식을 갖고 욕심을 내어 공부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연구도 그렇다. 골치 아픈 남의 논문을 읽고 이해해야 하고, 수식을 가지고 늘어지고, 실험실에서 잘 안 되는 걸 붙잡고 이리저리 바꾸어 보고... 이런 게 쉬운 게 아니다.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된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다.

내가 여기 유학생들에게도 하는 이야기이지만,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미국 학회에 미국 대학원생들보다 더 잘 다닌다. BK 프로그램 때문이다. 내가 학생 세 명 데리고 학회에 왔다는 이야기를 하기라도 하면 다른 나라 교수들은 놀란다. 거기엔 어떻게 그렇게 연구비가 많으냐는 것과 또 왜 그렇게 돈을 낭비하느냐는 의미도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기회가 되면 외국 경험을 시켜주려는 여러분을 위한 배려이다. 그만큼 밥값(?)을 하기 바란다.

미국 명문대에 유학을 나오는 학생들과 우리 대학원생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목표의식이 그럴 수 있다. 자기가 무언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뜻을 품고 학부 때 노력한 학생과 그저 그럭저럭 다니다가 앗 뭘 할까 하다가 대학원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학생과의 차이이다. 물론 우리 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게 아니다. 그런 경우가 유학생들보다 더 있다는 거다.
아이러니컬 하게, 한국의 대학원에선 소위 성적 좋은 학생들이 실험하는 걸 기피하지만, 미국에 온 유학생들을 보면 성적이 그렇게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험하는 것들을 많이 한다. 미국 애들이 안 하는 자릴 메꾸고 있다.
사람은 별로 변하지 않는다. 젊어서 어떤 자세로 사느냐 하는 게 대략 평생 그렇게 간다.
셀프 모티베이션이 없는 학생은 가르치는 것도 신나지 않는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렇다. 열정도 없고 감격도 없다.

여기 헤셀링크 교수의 학생들을 보면 전기과 학생도 있고 응용물리학과 학생도 있고 재료과 학생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다니지 않는다. 자기 살 길을 자기가 찾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쑤셔가고 찾아가며 무언가를 만든다. 여기 졸업이 얼마 안 남은 학생 하나를 보니, 교수가 돈이 없으니, 아예 NSOM을 스스로 만들었더군... (우리도 과거에 김기현 박사가 만든 적이 있지만.). 거기에다 대고 내가 우리 연구실엔 팁이 두 개인 NSOM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당연한 반응은? 그것으로 무얼 했냐? 이런 거다... 그러면 내 대답은? 아직 무언가를 하는 중이다...
물론 우리 학생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믿지만...

물론 우리가 스탠포드와 같은 그런 고무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 한 편으로는 학생들 외국 잘 나갈 수 있고, 연구비 많고 시설 훌륭하다. 어디서나 일의 성공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다. 장비가 없으면 다른 데 가서 사용료 내고 쓰면 된다. 연구비 없으면 따러 다니면 된다. 하지만, 똑똑하고 자기동기 부여가 된 인력이 없다면 어떤 일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건 여러분들이 나중에 부하 직원을 뽑을 때나 다룰 때에도 똑 같이 느낄 것이다.

물론 득도를 하거나 인생을 달관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더라도 나중에 무언가 하나 성취를 해 보고 그리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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