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멤버들에게

2010.03.10 17:28

이병호 조회 수:10206 추천:16

우리 연구실 출신 교수가 십 여 명 되다 보니 (축구 팀을 만들어도 된다고 하던데) 그런 건지, 교수가 되고 싶어 하는 멤버들이 꽤 많아 걱정이고 골치 아프다. 산업체에서 승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여러분 선배들이 교수가 쉽게 된 게 아니고 나름대로 고생들을 많이 했다. 고배를 여러 번 마신 끝에 된 사람들이 많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학계보다 산업계에서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산업체에 있어야 사회에 더 큰 임팩트를 직접적으로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교수가 상대적으로 더 안정된 직업이긴 하고,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 원하는 연구방향대로 연구실을 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연구 여건을 갖춘 대학은 많지 않고, 광학이란 게 실험을 하려 들면 기자재 구입비가 이만저만 필요한 게 아니라서 연구실 셋업이 쉽지 않다.

그래도 죽자사자 교수가 되고 싶다고 우기는 사람에겐 뭐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러려면 좋은 논문을 부지런히 써야 한다.
여러분들은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기 때문에 좀 불리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외국 박사를 선호하거나 최소한 외국에서 포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을 대학들에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리가 있는 면도 있다. 국내에서 늘 하는 분야 말고 외국의 명문대에서 좀 새로운 분야를 전공하여 귀국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을 무조건 탓 할 수는 없다.

우리 연구실 멤버들이 논문을 많이 쓰기 때문에 대개 최종 후보 서너명 군에는 든다. 그 중에서 다른 후보자에게 밀리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외국에서 연구한 경력이 없어도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도 교수가 된 사람도 여럿 있다.

어쨌든 최근 우리 연구실에서 박사를 받고는 산업체에 가지 않고 우리 연구실 또는 외국에 나가 포스트닥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지원 프로그램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 외국 대학에서 바로 포닥 인건비를 받고 나가는 훌륭한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외국의 명문대 유명한 교수 그룹에 들어갔다고 여러분이 잘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대개의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교수채용시 최소한의 지원자격으로 요구하고 있다.

아래는 서울대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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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적물의 인정 점수는 다음과 같다 . 다만 , 3 인 이상의 공동연구라도 제 1 저자 또는 논문에 명기된 교신저자의 경우에는 70 점으로 한다 .
단독 연구: 100 점
2 인 공동연구: 70 점
3 인 공동연구: 50 점
4 인 이상 공동연구: 30 점

( 연구실적물의 요건 ) ①지원 마감일이 속하는 월 기준 3 년 이내의 200 점 이상 400 점 이하의 연구실적물을 제출하여야 한다 . 다만 , 대학 ( 원 ) 장은 필요한 경우 소속 단과대학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간을 단축하거나 분량을 가중할 수 있고 , 그밖에 연구실적물에 관한 다른 요건을 추가할 수 있다 .
   ②제출된 400 점 이하의 연구실적물을 평가한 후 내용평가가 우수한 순서대로 200 점 이상이 될 때까지의 실적물을 최종 평가 대상으로 한다 . 다만 내용평가 평균점수가 같은 경우에는 인정점수가 높은 것부터 최종 내용평가에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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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이내에 최소한 200점의 기본 논문이 있어야 한다. 첫 저자로 3 편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둘째나 세째 저자로 잡다한 논문믈이 있을 수 있지만, 첫 저자가 아니면 약발(?)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3년에 3 편이 최소한의 요건이고 그 다음에 질을 따지는 거다.
요새는 BK 프로그램 경쟁력을 위해서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을 채용하려 드는 경향도 여러 대학에서 볼 수 있다.

회사에 가면 물론 논문 쓸 수 없다. 회사에서는 논문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고 시간 낭비이기 때문에 (그리고 학교로 도망가려 하는구나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못 쓰게 한다.

미국의 유명 그룹에 포닥을 가면 만사형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거기서 좋은 논문을 1년에 한 편 씩은 꾸준히 주저자로 써야 지원자격이 유지된다.

유명한 교수이면 논문의 질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학생이나 포닥이 논문을 만들어 가도 교수가 생각하는 수준이 못 되면, 그런 논문을 내는 것은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문을 못 내게 한다. 그러고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미국애들과 토론하고 아이디어 교환하고 그룹미팅하고 하다가 보면, 그리고 미국애들은 상당히 어그레시브 하기 때문에, 첫 저자 자리를 뺏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유명한 교수라도, 실제 그사람의 성격과 스타일이 어떤가에 따라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이는 사실 그 그룹에 포닥으로 갔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질 않고는 미리 정확히 알기는 좀 어렵다. 그건 교수들끼리도 좀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교수가 다른 교수에게 대하는 태도와 자기 연구원이나 학생에게 대하는 태도는 다른 경우가 많다.
결국 자신은 유명한 그룹에 포닥을 가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몇 년 지나서 서울대에서 쓴 논문들의 약발이 떨어지면(유효기간이 끝나면), 대학에 지원을 못하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말 교수를 하고 싶다면, 어디서든 죽어라 열심히 연구를 해서 좋은 결과들을 내는 게 상책이다.
외국의 유명 그룹에 포닥을 나가서 아웃풋을 잘 못내게 되면 내 생각이 좀 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여러분에게 제너러스하게 대해 주었는지, 또는 내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인물을 갖고 닥달을 해 논문을 만들었는지... 좀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자신을 냉철히 보고, 꿈은 갖되,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기 바란다.
열심히들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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