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추수감사절 휴일이어서 거리는 한산하기만 합니다.
악몽이라고 느껴질 만큼 정신없이 보내다가 조금, 시간의 여유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염치없게 몇자 적어 봅니다.
이제 미국에 온지도 4개월이 지나가는 데, 영어는 생각처럼 쉽게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survival English는 어느 정도 가능한 것 같은데,
좀 더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언어란 문화의 소산이어서 그런지 단순히 단어를 외운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얘들한테 제가 "How are you doing?"이라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이 "Good"그러면 끝입니다. 같이 이야기할 주제가 없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낄 때는, 모르는 것을 질문해서 알려고 할 때입니다.
이곳 전공 수업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용도 점차 어려워지고
매주 나오는 숙제도 쉽지 않은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교과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문제들...
mathematica등을 이용하여 수치해석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도 나오고,
전자의 scattering에 의한 움직임을 몬테카를로 방법을 이용해서
시뮬레이션해 보라는 문제도 나왔습니다. 단 일주일 만에....
(전공자는 쉬울 수도 있지만 처음해 보는 사람은 ...)
책만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office hour(instructor에게 숙제나 수업 내용을
질문할 수 있는 시간) 때 TA나 교수를 찾아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질문을 해서
알아내야 합니다. 수업 시간에 숙제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질문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냉혹한 (?) 기회의 균등이나 자유인 것 같습니다.
office hour때 교수 연구실 찾아가면, 중국 한생들 먼저 와서 30분 정도씩 질문합니다.
여기는 중국 학생들이 30% 이상은 되는 것 같은데, 질리도록 열심히 공부합니다.
제 차례가 돌아와서 질문을 할 때, 아직 영어가 짧아서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100% 표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instructor의 설명이 100% 이해되지 않아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옵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골돌히 생각해 봅니다...
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엉성하게 표현했다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당황해 하는 instructor 얼굴을 몇 번 보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미국에서 영어가 서투른 외국인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아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사무직원들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AS 요청하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두번째는 영어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말이 서툴러도 미국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 줍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결국 개개인의 인간성에 달려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research도 아직은 미국 lab. senior들에게 실험 장비 사용하는 법등에 대해
물어 보아야 할 일이 많습니다. 말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느니 차라리 직접 행동으로
의문 사항을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group meeting에 발표할 사항을
준비하느라 주말마다 고민하게 됩니다. 매주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아야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냥 막연한 이야기하다가는 돌 맞습니다.
오늘은 공식 휴일인데도 실험실에 가보니 서너명의 미국 얘들이
나와서 자신의 research goal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저도.... - 아직 커다란 진전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연구할 시간도
많지 않고...
이렇게 바쁜 와중에 작문, 발음에 관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과목을 두 개 듣고 있으니 더더욱 시간이 없습니다. 영어 과목도 매주 쏟아지는 숙제와 토론식
수업을 하느라 일주일에 20여 시간은 보내는 것 같습니다.
영어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영어 회화에는 아직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말도 예외가 없이 매일 밤 1-2시까지 숙제를 해도 늘 deadline에
쫓겨서 숙제를 내야합니다. 미국와서 TV 시청시간이 10시간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곧 있으면 기말고사 기간이고, 숙제와 별도로 다음주/다다음주에 presentation도 3개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 서투르니 남보다 많은 자료와 생각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떨 때는 이런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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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수 없이 울적할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때,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합니다.
그것들이 내 삶의 밑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수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이정하시인의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