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문 심사위원, 논문지 편집위원, 학술회의 의장 등으로 많은 논문을 보는데, 가끔 문제되는 논문들이 생긴다.
이는 특히 소위 후진국 또는 후발국에서 볼 수 있는데, 아마 논문 업적을 내라는 압박 때문에 생기는 것이리라.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겠지만, 연구실의 다른 동료들이 했던 일을 자신이 다른 곳으로 옮긴 후 자신의 일인 것처럼 논문을 내는 일부터, 정말 실험을 했는지가 의심스러운 논문, 거의 똑 같은 논문을 여기 저기 내는 일, 메이저 리비전으로 심사평을 준 논문에 대해 고치지 않고 반 년 뒤 요행을 바라며 똑 같은 저널에 새 논문처럼 투고하는 논문 등등...
마지막의 경우는 유명한 교수 연구실의 논문인데, 아마 정황으로 보아서는 거기 비지팅 스칼라로 온 후진국 교수가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래서, 요새는 많은 논문지가 공동저자의 연락처들을 모두 입력하지 않으면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한다. 즉, 공동저자도 모르게 유명한 사람 이름을 넣고 내는 논문들이 발견된다는 이야기겠지...
어쨌거나, 위의 예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실은 도덕적 문제가 되는 두 건의 우리나라 논문을 본 적도 있다.
세상이 하도 업적 업적하고, 경쟁이 심하다 보니 도덕을 무시하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상의 것들은 우리하고는 상관 없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으니, 여러분들도 혹시라도 각별히 주의하길.
내 의뢰로 논문 심사를 하던 어떤 외국인이, 그 논문이 자기 논문을 도용했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한 문단을 베낀 건데, 참고문헌으로 인용하지 않고 베꼈다. 그런데, 이는 실은 서론 부분의 글이다. 즉, 논문의 핵심 내용과는 관계 없는 부분이다. 아마 서론에 쓸 마땅한 말을 못 찾아 베낀 모양인데, 그 원래 논문을 인용이라도 했으면 아마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그리 하질 않았다. 심사를 했던 사람은 이 논문을 단지 리젝트 시키는 데에서 끝내지 말고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논문의 주 내용을 도용했다면 나도 서슴치 않고 강력한 무언가를 할 텐데, 이건 서론이라 좀 애매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베낀 것이 분명하고 그런 요청을 받았는데, 그냥 넘어가기도 어렵다.
내 이름이 저자에게 공개되면서 (심사위원은 익명으로 남는다.) 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유쾌하지 않다...
편집위원이나 학회장 같은 것이 명예만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책임과 괴로움도 따른다. 안 해보면 해 보고 싶겠지만, 사실 해 보고 나면 그냥 연구만 열심히 하는게 제일 좋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어쨌든, 여러분 중에도 혹시라도, 영어가 짧아 고민하다가 서론을 남의 것을 베끼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