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는 멤버들에게 - 객관과 주관

2007.02.28 17:43

이병호 조회 수:3543 추천:180

내가 가끔 이야기 하지만, 대학원 학생들에는 두 가지 극단적 경우가 있다. 하나는 책상에 남의 논문 인쇄한 것을 잔뜩 쌓아 놓고 열심히 읽기만 하는 학생이다(아니면 남의 논문 파일만 잔뜩 다운받아 보든가…). 아는 건 많은데 자신의 아이디어가 별로 없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무얼 했다고 (또는 무슨 아이디어를 냈다고) 떠드는데, 검색해 보면 전에 다른 사람이 한 거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충분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다.

물론 항상 좋은 말은 중용이다. 두 가지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데, 그래도 둘 중에 고르라면 대개 후자가 더 낫다. 너무 많이 공부만 하고 앉아 있는 것 보다, 실제 행동하여 실험하고 시뮬레이션하고 하는 게 낫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또는 적어도 변형된)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 객간과 주관…
다음 글을 보자.

“실험에 의해서 결정된 일 앞에서는 자기 의견도 남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말살시켜야 한다. 오로지 선입관념을 증명하기 위해서 논의를 편다든지 실험을 한다든지 하면 그 사람은 이미 정신의 자유를 잃고 있는 것이며 진리를 탐구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 사람은 개인적인 허영심, 혹은 기타 잡다한 인간적 감정을 뒤섞은 좁은 과학밖에 만들지를 못한다. 자존심은 일체의 무익한 논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두 학자가 각자의 구상, 혹은 학설을 지켜가기 위해 논쟁하고 있을 때, 그들의 상반된 논의 속에는 절대로 확실한 것이 꼭 하나 있다. 그것은 두 학설이 다 불완전하고 어느 쪽도 진리를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참다운 과학적 정신은 우리들을 겸허하게 하고 친절하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진실은 극히 적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연현상 앞에서는 무한한 곤란에 봉착하고 그 때문에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인적 논쟁으로 인해서 각자의 노력을 분할하고 수포화시키는 대신에 이것을 결합하는 편이 현명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진리를 발굴하려는 과학자는 항상 자유롭고 평온한 정신을 가지면서, 만약 가능하다면 Bacon이 말했듯이 인간적 감정에 의해 ‘젖은’ 눈을 결코 갖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끌로드 베르나르: 1813-1878.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

여러분은 이렇게 훈련 받아왔다. 한 마디로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조작하면 안 된다. 신문에 실린 책 광고를 보니, 뉴튼이나 멘델도 실험을 조작한 것 같다는 글도 있던데,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객관적 사실이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은(공학은 말할 나위 없지만) 인간과 무관하게 ‘자연에 대한 순수한 객관적인 연구’만은 아니다. 지구에서의 지각 변동에 대한 연구는 중요하지만, 달에서의 그것은 덜 중요하다. 더 나아가 저 먼 별에서의 지각 변동에 대한 연구는 의미가 없다. 어떤 분야의 과학이 뜨느냐 하는 것도 인간과의 관련성이 중요한 요인인 경우가 많고 또 어떤 분야로 대형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느냐 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다음 글을 보자.
“나는 제군을 학창에서 사회로 보냄에 있어서 치하의 마음도 간절하거니와 제군이 짊어진 짐과 맡겨진 책임을 생각할 때에 한갓 애처로운 생각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제군의 굳은 의지와 끓는 피와 무한한 소망이 허락되어 있음을 믿음으로써 제군의 노력에는 반드시 성공이 있을 것을 믿고 오직 제군의 건투를 비는 바이다.”

이는 1950년대에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어떤 저명인사가 한 축사의 맺음말인데, 글 전체가 참 명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분의 친일 전력이 드러나 애석하게도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은 분이라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어쨌든 글 자체로만 보면 상당히 고무시키는 말이다.
“여러분이 사회로 나가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확률로 보면 여러분이 똑똑하니 아마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40 되어 잘릴 수도 있고…. 그 전에 잘 판단하여 살길을 찾아라.”
뭐 이런 게 어쩌면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데 대한 걱정은 학부생들에게 커서, 학교를 그만두고 의대로 간다, 약대로 간다, 고시를 공부한다… 이런 경우들을 본다.
많은 경우는 객관적 잣대로 분석한 것도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이런 결정을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또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평균의 경우와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졸업하여 성공한 경우(평균이 아니라)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얘기가 좀 샜지만, 객관과 주관이 다 중요하다.
우리가 객관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된다는 건 오해다. 학자들을 보면, 물론 연구비를 따기 위해 그러는 면이 있지만, 자신이 하는 연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거라고 믿는 듯한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의 울타리에만 갇혀 있거나 스스로 환상을 만들어 가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그레시브 하기 마련이고 그런 열정이 또 성공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객관적 분석은 중요하다. 그것이 자신이 세상과 그 속의 여러 현상을 정확하게 보고 예측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준다. 하지만 객관적 분석에만 갇혀 있으면 리뷰 논문은 쓸 수 있겠지만, 창의적 논문은 쓸 수 없다. 이 사업을 해도 안 될 것 같고 저 사업을 해도 안 될 것 같기만 하다. 과감히 새로운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경영자로서의 결단을 내릴 수 없다. 경영자에게 pros & cons 자료만 만들어 주는 참모밖에 될 수 없다.
객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이고 거기에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

이번 졸업식에서 여러분이 나의 시간을 묻지 않고 찾아와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밤에 내게 찾아 온 기특한 멤버가 있었다. 첫 월급을 탔다고 뭔가를 들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본받으란 건 아니다. 나에게 뭔가를 주려면 나중에 성공한 다음에 큰 연구비나...
직장에 가 보니 자신이 똑똑한 축에 속한다는 걸 알고 자신감을 찾는 모양이었다.

세상사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중요하다. 하지만, key factor는 이를 바탕으로 한 도전적인 자신 스스로의 결정이다. 분석은 냉정해야 하지만, 응시는 45도 쯤은 위를 향해야 한다. 90도 위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객관적 분석이어야 하지만, 객관적 분석이 자신의 시선을 45도 아래로 떨어뜨리는 발목잡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꿈을 가진 사람만이 발전을 할 수 있다. 꿈은 비선형 파동방정식에서 nonlinear polarization 항과 같은 driving force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의 졸업이 여러분의 자랑이 되고, 우리 연구실의 자랑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선형적 quantum jump가 여러분의 앞길에 가득하길(너무 주관적인가…), 종종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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