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E 학회참석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와 있다.
초청발표 뿐 아니라 김영민 논문을 대신 발표하는 것 등등을 잘 마쳤다.
김영민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오사카 대학 교수님도 있었다. 왜 김영민이 안 왔냐고 하기에 너무 많이 다녀서 오지 말라고 했다고 내가 말했다...
김영민이 졸업하고 뭐 할 거냐고 묻더군...
그 논문과 박길배 발표에 질문이 많았다. 노숙영도 수고했다.
이승열 포스터 논문에도 관심들이 많았다.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는 곧 있을 일본, 중국학회에 나를 초청한 사람들도 있다.
내가 거듭 이야기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미국 대학원생들보다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더 많이 다닌다.
여러분이 너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이번에 내가 미국에 오는 걸 말린 학생들이 좀 있는데 (그래서 내가 내 초청발표 외에도 네 개 논문을 커버하느라 고생했다), 계속 가야 하는 학회들이 많으니 열심히 결과들을 내기 바란다.
나는 17일에 미국을 떠나 18일에 귀국한다.
그 동안 너무 바빠 결국 골프채를 못 잡아보고 귀국한다.
미국에서 해외로 나갔다 온 게 지난 1년간 11번이다. 미국내 돌아다닌 것 빼고...
스탠포드의 내 호스트 교수님이 두 번 자신의 별장에 가자고 하는 것도 시간이 안 맞아 거절해서 매우 미안했다... 그 양반도 나처럼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분이다.
내일 스탠포드에 있는 OSA 전임회장님 가족 등과의 식사를 마치면 모든 일이 끝난다. 김주환을 한 번 더 봐야 하고 산호세에 있는 대학 동창들을 한 번 더 봐야 하는 일이 남았다. 방지훈은 내가 그 집에도 가 보고 했지만 아마 다시 보질 못하고 갈 것 같다.
스탠포드 유학생들과도 식사를 한 번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몇 명과만 했다. 그것에 대해 좀 미안하게 생각한다. 워낙 많아서...
미국의 초등교육과 대학원 생활 등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회식자리에서 하고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명문대학을 가려면 공부도 잘 해야 하지만, 운동 하나를 끝내주게(?) 잘 해야 하고 악기 하나를 끝내주게 잘 해야 한다. 각종 대회에 다니고 수상경력이 있고 해야 한다. 취지는 좋다. 이런 게 어느 수준에 오르려면 단기간에 벼락치기로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긴 시간동안 꾸준한 인내와 노력으로 연습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테크닉이다.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그런 성취를 한다는 것을 높이 사는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게 다 꾸준한 레슨으로 가꾸어지는 것이고 (좋은 선생님일수록 레슨비가 높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집에서 놀면서 (다른 사람의 수입이 충분해서)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차를 태워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부가 학력으로, 다시 부로 세습되기가 용이한 구조다. 물론 돈이 아주 많으면 기여입학도 가능하다.
그러면 그럴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대학도 안 가고 평범하게 산다. 그래도 크게 불만은 없는 사회다.
중고등 학교내에서도 운동이나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개인 레슨을 받는 것보다 수준은 높지 않지만, 즐기는 걸 배울 수는 있다. 학교에서 1주일에 한 두 번씩 1마일을 뛰는 것을 거의 의무화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스트레스는 훨씬 덜하다. 좋은 대학 가려면 우리 중고등생들은 공부, 공부, 공부... 이렇지만, 미국 아이들은 운동과 악기를 배우면서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진다.
대학은 명예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돈을 더 잘 버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가는 곳이란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 등록금을 내느니 빨리 직업전선에 뛰어들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전쟁의 폐허에서 단시일 내에 경제적 발전을 했고, 그 와중에 누구는 부자가 되었고 누구는 그렇지 못했다. 부자가 된 게 꼭 정당한 방법으로 된 것만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등이 많았고, 어떤 면에서 재수가 좋으면 거기 땅값이 올라 벼락 부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다만 시기를 놓쳐서, 또는 운이 닿지 않아서, 또는 너무 도덕적이어서, 또는 정보가 좀 부족해서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모두 평등하다는 개념이 보다 강하다.
그래서 남이 나보다 좋은 대학 가는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심지어 개인의 타고난 지적 능력의 차이까지 별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향도 있다. 나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더 좋은 과외선생을 붙여 아이를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상대적으로 처지는 것을 못 참기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희생을 하고 자녀에게 올인한다. 가정도 포기하다시피 한다. 기러기 가족... 팔로알토에도 그런 사람들이 좀 있다.
이런 자세가 좋은 면도 있다. 사실 좋은 대학 보내는 게 자녀가 나중에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부모가 힘 써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뭐 피를 말리는 완전 무한경쟁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서울대 대학원에 들어왔는지... 더 신기한 것은 우리 학생들중에 집안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해외에 못 나가 봤다가 대학원에 와서 해외여행에 눈을 뜨고 너무 많이(?) 다니려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어쨌든,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인도의 경우도 대단하다. 쿠퍼티노의 SAT 점수가 높게 나오는 학교들은 모두 인도계, 중국계, 한국계 학생들로 뒤덮인 학교들이다. 부모의 극성은 극에 달해, 악기를 잘 해 입상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아시아계 학생들이다. 아시아 학생들이 손재주가 좋고 똑똑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국의 토박이(?)들이 이걸 가만 둘 리 없다. 대학 입학사정에서 SAT 비중을 낮추고 학생들이 다른 괴외활동(리더십을 보이는 것이라든가) 등의 비중을 높인다.
명분은, 단순히 수학문제를 푼다든가 잔 기술을 배우는 교육보다는 창의력과 지도자 교육, 봉사를 하는 마인드를 갖는 교육 등등을 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그건 그렇고, 대학원은 어떠냐 하면... 이공계 대학원들은 중국, 한국, 인도 유학생이 없으면 망한다. 한국에서 성적 좋은 대학생들은 실험을 싫어하고 고상한 이론이나 컴퓨터 웍을 선호하지만, 그런 학생들이 미국에 유학을 오면 미국 애들이 안 하는 실험 무지 많이 한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세미나 시키면서 교육시키고 실험 방법, 시뮬레이션 방법 등등을 가르쳐 주고... 논문도 누가 첫 저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사이 좋게 상의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없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각 학생들이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적극적이어야 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아이디어를 찾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캐치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많이 푸는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한 문제를 실수로 틀리면 내신 등급이 팍 떨어진다든가 하는 비극적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잘 하는 애들은 깊게 공부하고 대학 교과목도 미리 듣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붐이 생기지만...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애들이 계산도 못하고 수학 실력이 형편없지만, 소수의 잘 하는 아이들은 그 능력이 놀랍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 과학자들 중 미국 사람 많다.
말이 길어졌는데, 요지는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사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착상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폭 넓게 이것저것 많이 보고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유럽 학회들에 갔다가 로마와 바티칸 관광을 처음 했는데, 유적들에서도 많은 감명을 받았지만, 미켈란젤로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고, 가이드 한 명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가이드는 여성인데, 방콕에서 가이드를 하다가, 친구가 보내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대한 작품설명집을 보곤 짐을 싸서 싼 비행기들을 타고 스물 몇 시간만에 로마에 와서 바로 바티칸에 들어가 그걸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 가이드로 눌러 앉은 것이다.
뭐, 이런 걸 보면 세상 사람들은 아 그사람은 예술에 미친 사람이다라든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메타머티리얼에서 맥스웰 방정식을 푸는데 미치면, 남들은 그저 저 미친... 왜 그렇게 사나... 뭐 이럴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에 미쳐보길 바란다. 특히 젊을 때에 무언가에 미쳐 인생을 걸고 일가를 이루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