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1 18:13
새해가 밝았다.
재학생이건 졸업생이건 장기적인 큰 뜻을 품고 거기에 맞추어 새해를 계획하기 바란다.
이런저런 꿈을 꿀 수 있겠지만, 영향력이 있는 사람, 그리하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뜻을 품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력이다. 여러분이 특정한 전공의 길을 택한 이상, 그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어야 존경 받을 수 있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올바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항상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졸업생 중에 산업체에서 팀장급 지도자들도 여럿 있고 교수가 된 사람들도 십 여 명 되는데, 자리가 높아질 수록, 자신에게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진다.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지기 쉽고,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이 그냥 만족스럽기만 하고 자신이 잘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떠들고 부하직원이나 학생들이 거기에 대해 묵묵히 있으면, 자신의 말이 맞고 잘 먹혀 들어간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방과 일에 대해 공정한 자세를 취하고 객관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가를 가끔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려 하지 않는가를 가끔 반추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재능을 타고 났고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살 지 말고 작건 크건 간에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겠다는 뜻을 갖고 살기 바란다.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에 무시당하지 않는 길도 결국은 우리나라가 실력과 힘을 갖추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 실력이란, 우리나라의 산업력일 수도 있고 학술적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런 길을 위해 인재들인 여러분들이 기여할 수 없다면 장래가 암담할 뿐이다. 여러분들이, 의사들보다, 약사들보다 국력 신장에 더 직접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끔은 교과서적인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 볼 필요도 있다.
-----
감옥에서 어머님께
심 훈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 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 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 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쇠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 자도 떼어버리고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 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 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쟁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 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이 꺼지는 것을 신호 삼아 몇 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같은 발원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님!
우리가 천 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나이 어린 저까지도 이러한 고초를 그다지 괴로워하여 하소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니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 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기가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어머님,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한테 사식이 들어왔는데 첫술을 뜨다가 목이 메어 넘기지를 못합디다. 그도 그럴 것이외다. 아내는 태중에 놀라서 병들어 눕고 열두 살 먹은 어린 딸이 아침마다 옥문 밖으로 쌀을 날라다가 지어드리는 밥이라 합니다. 저도 돌아앉으며 남 모르게 소매를 적셨습니다.
어머님,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 하였습니다. 돌아간 사람은 먼 시골의 무슨 교를 믿는 노인이었는데, 경찰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고 옮겨 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한 나날이 뼈에 사무쳐 어제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더 높았습니다. 밤이 깊어 야박골 터에서 단소 부는 소리도 그쳤을 때,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맡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쳐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희미한 눈초리로 5촉밖에 안 되는 전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추억의 날개를 펴서 기구한 일생을 더듬는 듯합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본 저는 무릎을 베개 삼아 그의 머리를 괴었더니, 그는 떨리는 손을 더듬더듬하여 제 손을 찾아 쥐더이다. 금세 운명을 할 노인의 손아귀 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어머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벌떡 솟구치더니 '여러분!' 하고 큰 목소리로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찢어질 듯이 긴장된 얼굴의 힘줄과 표정이 그 날 수천 명 교도 앞에서 연설을 할 때의 그 목소리가 이와 같이 우렁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그의 연설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고는 뒤미처 목에 가래가 끓어오르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아서 어느 한 분이 유언할 것이 없느냐 물으매, 그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 보이나 그래도 흐려지는 눈은 꼭 무엇을 애원하는 듯합니다마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 날에 여럿이 떼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절도 다 부르기 전에 설움이 북받쳐서 그와 같은 신도인 상투 달린 사람은 목을 놓고 울더이다.
어머님, 그가 애원하던 것은 그 노래가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일각의 원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슴 한복판을 울리는 그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후렴이 끝나자, 그는 한 덩이 시뻘건 선지피를 제 옷자락에 토하고는 영영 숨이 끊어지고 말더이다. 그러나 야릇한 미소를 띤 그의 영혼은 우리가 부른 노래에 고이고이 싸이고 받들려 쇠창살을 새어 나가 새벽 하늘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저는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날이 밝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프고 쓰라렸던 지난 날의 모든 일을 큰 모험 삼아 몰래몰래 적어두는 이 글월이 어찌 다 시원스러이 사뢰올 수가 있아오리까? 이제야 겨우 가시밭을 밟기 시작한 저로서 어느새부터 이만 고생을 호소할 것이오리까?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 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 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어 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온 듯 먼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3.1 운동으로 옥에 갇혀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759 | 나노닉스사에 우리 연구결과 소개 | 이병호 | 2011.01.08 | 9577 |
3758 | 신년교례회 | 박지연 | 2011.01.05 | 7924 |
3757 | FW: 교수님께 기쁜 소식 전해드립니다. | 이병호 | 2011.01.04 | 7583 |
» | 새해를 맞으며 | 이병호 | 2011.01.01 | 4822 |
3755 | 신년교례회 | 이병호 | 2011.01.01 | 8546 |
3754 | 신입생 세미나 공지(수정) | 이승열 | 2010.12.27 | 9309 |
3753 | 홈페이지 학교 외부차단문제 | 관리자 | 2010.12.27 | 9074 |
3752 | 우리 연구실 BK 순위 | 이병호 | 2010.12.23 | 6493 |
3751 | 올해의 NCRCAPAS Awards | 이병호 | 2010.12.20 | 6088 |
3750 | [re] 올해의 NCRCAPAS Awards | 이병호 | 2010.12.22 | 67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