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2013.01.01 19:25

이병호 조회 수:5914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의 베스트 셀러 중에 피로사회란 책이 있었다. 서점에 가서 사려다가 너무 얇아 서서 읽으면 되는데 싶어 사지는 않았다. 저자에겐 미안하지만재독 한인 철학자가 쓴 책인데, 내용은 신선하고 음미해 볼만 하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과도한 자기 긍정이 결국 자기가 의사결정의 주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를 착취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자신의 능력보다 과도하게 자기최면을 거는 의욕과잉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분에겐 별로 해당되지 않는다. 다른 좋은 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다가 우리 대학원으로 옮겨 온 다른 연구실 학생들에 따르면 서울대 학생들이 더 학구적이라고 한다. 이는 취업에 대한 걱정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준다.

사실, 우리 학부의 어떤 교수님들은 대학원생들의 태도를 못 마땅해 하신다. 산학을 하면서 어차피 대기업에 가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연구를 하여 졸업논문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저널 논문을 더 쓸 생각을 하지 않고 학과 내규만 만족시킬 정도만 되면 졸업시켜 달라고 떼를 쓴다는 거다. 이건 미국의 명문대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취직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에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 중 상당수가 종국적으로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 연구실출신 교수들이 열 네 명쯤 되던가? 그러니, 그런 소망을 갖는 게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어 알겠지만 쉽게 되는 적이 거의 없다. 몇 번씩 고배를 마시다가 된다. 특히 요새는 지원자들이 하도 많아, 엄청 많은 논문을 쓰든지 엄청 훌륭한 저널에 발표한 논문들이 있든지 해야 한다. 이게 여러분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줄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경쟁사회에 사는 한 그걸 어느 정도 즐길 수 밖에 없다.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고 좋은 연구결과를 내어 발표를 하는 것 자체를 낙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학회에서 숱한 발표를 했고 매 발표마다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한다. 그건 내 와이프가 여러분에게 증언한 바와 같다. 어떤 교수님들은 학회에서 학생들만 발표시키고, 학회차 여행을 배우면서 휴식을 취하는 편한 기회로 삼기도 한다. 나는 내가 직접 발표하지 않는 학회에 경비 들여 가는 것은 무지 아까워 그리 못한다. 그리고 내가 발표 안 하면 재미도 없고 약간 수치스럽기도(?) 하다. 내가 무슨 위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초청발표 의뢰를 받는 학회만 간다. 사실, 그것들만 해도 너무 많다.

역시 유행인 , , 라는 책에 보면 (이 책은 무지 두껍다. 이게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위를 장기간 지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내용을 설명하는 영어 동영상도 있고 이걸 중고생들이 본다는 거다.), 주요 주제는 아니지만 이런 부분이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발명자들이 먼저 발명을 하고 그걸 어디다 쓸지 찾게 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는 거다. 예를 들어,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들고, 이 발명품이 소용될 만한 열 가지 용도를 제시했는데, 거기엔 음악을 듣는 게 없었다고 한다. 다른 기업가들이 축음기를 이용해 주크박스를 만들어도 그걸 못마땅해 하다가 20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축음기의 주요 용도가 음악을 재생하는 거라는 데에 동의했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많은 발명품의 발명자란 게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제임스 와트가 주전자 주둥이에서 김이 솟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이고 실은 다른 사람이 발명하여 상용화 되었던 증기기관을 고치던 중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 된 것이라고에디슨이 발명했다는 백열전구도 실은 다른 발명가들이 얻은 수많은 특허를 개량한 것이라고

명예와 업적, 부를 좇기 보다는 과정을 즐겨야 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고 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별로 재미 없는 일을 하며 산다. 다행히도 여러분들은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복 받은 사람들이다.

에디슨이 위대한가 아인슈타인이 위대한가?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전구나 축음기는 인류의 생활에 변혁을 가져왔지만, 상대성 이론은 어디다 쓰는가? 인공위성 시간 보정하는 정도 말곤

그런데, 이젠 LED 조명이 대세가 되어 가고 백열전등은 사라졌다. CD에 밀려 축음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자기 성과가 얼마나 잘났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재미를 갖고 자신의 일을 즐기며 열심히 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다.

인생은 딱히 길지 않다. 중국계 미국인이면서 벨랩에서 많은 부하들을 길러 내어 광통신계의 대부처럼 여겨지던 팅이 리 박사님이 며칠 전 별세했다. 연말/연초 휴무중이라 아직 OSA에 부고기사가 올라오진 않았지만.

프랜시스 유 교수님은 80세 생일잔치 DVD를 내게 보내셨다.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꼭 도와주시겠다고 하신다. 이분이 뜻 하는 것은 나를 IEEE Fellow 로 추천해 주시겠다는 것인데, 뭐 나는 이만하면 족하다. 사실 나는 이 분 제자도 아니다. 이 분 연구실을 다녀간 사람들은 중국의 여러 기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권오대 교수님은 재작년 정년퇴직 하실 때 나를 꼭 퇴임강연에 오라고 하셔서 갔었다. 이 분은 정년에 맞추어 책을 쓰셨는데, 사실 별로 팔릴 책은 아니다. 첫 버전은 내가 이승열에게 주었다. 교정된 버전은 내가 갖고 있다. 아무튼 열정적으로 독특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살아 오신 분이다. 책의 이름은 아인슈타인 하우스. 이 책의 처음은 외국 책에 나왔던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일화를 번역한 부분으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이 업적을 내기 전, , 유명해지기 전 일종의 학원에서 시간제 강사로 아르바이트 하던 때의 단면이다. 열정을 느껴보기 바란다.

올림피아 아카데미 (이건 학원 이름. 수올, 물올 이런 거 아님…)

1902년 부활절 휴가기간 베른 거리를 걷다가 신문을 샀는데, 우연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취리히 공과대학 졸업생, 물리학 레슨, 시간당 3프랑이란 광고를 보았다.

혹시 이 사람이 물리의 미스터리로 나를 안내할 수 있으려나.’

주소대로 찾아가 계단을 오르고 초인종을 누르니,

들어오시오!’

하고 큰 소리가 나고는 그가 나타났는데 큰 눈의 유별난 광채에 놀랐다. 들어가 앉으며, 나는 철학을 전공하는데 물리학의 지식을 심화하여서 네이처에 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도 이전에 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는데, 희미함과 임의적인 철학을 그만두고 이제는 물리학만으로 한정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얘기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의기가 투합하고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돌아가려니 그는 밖으로 따라 나와 거리에서 또 반 시간을 보내고는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나는 그의 비상한 통찰력에 압도되고 물리 지식의 해박함에 경탄하였다. 말이 유창하지는 못하였고 명확한 이미지까지 떠올리는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단조로운 톤으로,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사물을 설명하였다. 그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설명하려고 가끔 일상에서 겪는 예들을 들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구사하는 능력이 출중하였지만, 물리에서 수학을 잘못 쓰는 것들을 비판하였다.

물리라는 것은 원래 직관적이며 구체적인 과학이야. 수학은 단지 제반 현상을 주관하는 법칙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몇 주 후 콘라트 하비히트가 가담했는데, 그는 샤프하우젠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을 알았고, 수학교사가 되는 공부를 마치려고 베른에 왔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와 모일 때 함께 식사를 하도록 했다. 먹는 것이 아주 검소하여서 소시지, 치즈, 과일, , 차 한 잔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린 활기가 넘쳐흘렀다.

자신의 생활을 감당키 위해 그는 학생들을 더 받아야 했으나 거의 없었기에 돈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생활비를 쉽게 벌려면 거리에 나가 바이올린을 키면 될 걸 하고 말했다. 그렇게 한다면 그룹이 되기 위해 나는 기타를 배울까 하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문제가 생기면 그가 얼마나 몰입하는지 예를 하나 들자. 베른 거리를 걸으면 우린 식료품점을 하나 지나곤 했는데, 거긴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 진열되고 그 중엔 캐비아도 있었다. 나는 루마니아의 부모들과 맛있게 먹었던 캐비아를 떠올렸다. 거기선 상당히 저렴했는데 베른에서는 범접키 어렵게 비쌌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에게 캐비아 찬사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는 거야?’

, 그 맛이란 상상이 안 되죠!’

하루는 내가 하비히트에게 얘기했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을 깜짝 놀라게 하자. 3 14일 생일날 캐비아를 서브하자고!’

일상적인 것이 아닌 무얼 먹으면 그는 무아경에 도취해서 장광설의 찬사를 늘어놓곤 했다. 이번엔 그가 만족함이 도를 넘으면 어찌 될 지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다. 3 14일에 우린 그의 아파트로 저녁 먹으러 갔다. 소시지 등을 전과 같이 준비하고는 캐비아를 세 접시 나눠 식탁을 준비하고 아인슈타인이 오도록 했다. 가끔 그랬듯이, 그날 저녁은 갈릴레오의 관성의 원리를 얘기하였다. 그는 얘기에 빠져 모든 세상사의 기쁨과 시련에 대한 의식을 깡그리 잃어버렸다. 우리가 식탁에 앉았을 때 그는 관성원리에 관해 설명하는 동안 캐비아를 한입씩 집어넣고 있었다. 하비히트와 나는 서로 눈짓하며 경악하였다. 그가 캐비아를 몽땅 먹어버리자 나는 물었다.

당신이 지금 뭘 먹었는지 알아요?’

그의 큰 눈이 나를 보며,

? 이게 뭐였는데?’

맙소사! 그게 그 유명한 캐비아라고요.’

아하! 바로 캐비아였어!’

놀래면서 그가 한 말이었다. 잠시 말이 없더니,

글쎄, 나 같은 농부에게 식도락가가 먹는 고급 음식을 주면, 그걸 감읍할 줄도 모르잖아.’

(권오대, 아인슈타인 하우스, 새길, 2011)

 

아무튼, 늘 그렇듯이, 나의 결론은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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